2008년 10월 11일
The Way to Write
© Tim Teebken

한 나이든 작가가 어떤 작가 지망생에게 질문을 받았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요?'
그가 답한다. '엉덩이의 앉는 부분과 의자의 앉는 부분을 접합합니다.'
일단 앉아서 쓰고 보라는 거다.
글쓰는 방법을 논하는 책은 너무나도 많다. 작가 지망생들울 위한 강의와 교재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작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고나는 것이다.
수많은 책들과 강의들은 그 타고난 작가가 자신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야기들이요. 머리 속에서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아요."
Michael Chabon의 소설에서 그려진 한 '타고난 작가' 학생이 교수에게 고백한 말이다.
교수는 주체할 수 없이 터지는 이야기 봇물을 정리하고 맥을 잡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이런 저런 방법론을 열거하면서,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 서서히 빛을 잃거나, 빛을 발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 끼어들게 되면, 자신의 가치관이 젊고 순수한 창작의 봇물을 오염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낼 수 있다. 경제원리가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수많은 사상들이 넘쳐흐르게 된다.
잠재된 작가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인식하기도 전에 오염된다. '영향받는다.'
그래서 비교적 자신의 세계에 집중되어 있는 십대에 쓴 글들이 순수하고 창의적이다. 비교적 '덜 영향받는다.'
다행히 자신만의 세계를 오염 직전에라도 구축할 수 있다면, 주어들은 사상들을 정리하는 꼴의,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인 양
착각하는 글들과 책을 덜 토해낼 수 있다. 새로 태어나는 '타고난 작가'를 더럽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다.
'일단 앉아서 쓰라.' 라는 말처럼 자신있는 말이 어디 또 있을까.
자신의 세계에 대한 신뢰나 애정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순수함'에 대한 확신이 있는 이가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타고난 작가와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에서 터득한 방법들에 익숙한 이도 이 말을 따를 수 있다. 둘 모두 쓰면서 늘고,
쓰면서 소재가 생기고, 쓰면서 영감을 얻기 때문이다. 동시에, 글 쓰는 능력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 David C. Chen
하지만 이야기를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이다.많은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소재에서 특이점을 잡아내기 때문이다. 타고난 작가이다.
십대의 Rimbaud는 갑자기 '글'을 더 이상 쓰지 않았다.
그는 오염되지 않은 사상을 마음껏 뿜어내고 그것이 고갈되고 더럽혀지자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처럼 극단적일 필요는 없다. 이야기가 있으면, 쓴다. 나의 예민함을 믿어 본다.
내가 조금이라도 덜 영향받았길 바라면서 일단 쓴다. 결국 내용물이 그릇보다 우선한다.
재주는 글에 뿌리는 맛깔스러운 양념이고, 재능은 이야기 자체이다. 어쩌면 '타고난 작가'라는
존재는 그저 누군가를 추켜 세우길 좋아하는 이들의 상상 속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 by | 2008/10/11 02:54 | _zan_ | 트랙백 | 덧글(0)


